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아몬드』를 읽으며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아몬드’라는 단어였다.
소설 속 아몬드는 머릿속에 있는 '편도체(amygdala)'를 가리킨다. 주인공의 어머니는 의학용어인 편도체와 생김새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그것을 ‘아몬드’라고 부른다. 그래서 주인공은 매 끼니마다 아몬드를 먹는다. 하지만 정작 그의 머릿속에 있는 아몬드는 좀처럼 자라지 않는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자꾸 한국어 표현들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나 머릿속에 아몬드를 두 개 가지고 있다.
우리는 ‘누구나’를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재미있는 표현이다.
‘누구’는 사람을 묻는 말인데, 여기에 ‘-나’가 붙으면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괄하는 표현이 된다.
‘누구나’라는 말에는 묘한 힘이 있다.
예외 없이 사람을 포함하면서도, 그 사람 하나하나를 특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아몬드』가 이야기하는 인간의 감정과도 닿아 있는 표현인지 모르겠다.
차는 가까이 오고, 사람은 다가온다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하나 재미있었던 것은 ‘가까이 오다’와 ‘다가오다’ 같은 표현이었다.
차가 가까이 오면 우리는 몸을 피하거나, 충분히 가까워지면 뛴다.
하지만 사람이 다가오면 우리는 부딪히지 않기 위해 한쪽으로 비켜선다.
물리적인 ‘거리’는 비슷한데, 한국어에서는 대상과 상황에 따라 다른 동사를 선택한다.
차가 가까이 온다.
사람이 다가온다.
사람과 부딪히지 않도록 비켜선다.
언어를 배우는 사람에게는 모두 ‘come closer’ 정도로 보일 수 있는 상황이지만, 한국어 화자에게는 그 안의 움직임과 관계가 조금씩 다르게 느껴진다.
그래서 한국어교육은 문법과 어휘를 가르치는 것에서 끝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를 배우는 것은 사람을 배우는 일이기도 하다
『아몬드』에서 주인공에게 변화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사람과 교육이었다.
교육도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행위다.
그래서 작가가 이야기한 ‘적절한 온도의 이성과 감정’이 교육에서는 어떻게 가능할지 계속 생각하게 된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문법을 정확하게 가르치고, 어휘를 많이 알려주는 것만으로 한국어를 충분히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한국인의 감정을 이해하는 일이기도 하고, 동시에 한국인의 이성이 어떤 방식으로 교육되고 사회 안에서 형성되어 왔는지를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하다.
언어는 그 생각과 감정이 밖으로 나오는 하나의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어 학습자가
‘가까이 오다’와 ‘다가오다’의 차이를 알고,
‘비켜서다’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어 화자가 왜 그 상황에서 그 표현을 선택하는지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때의 한국어는 단순히 활자를 읽고 문법 기능을 수행하는 언어를 넘어설 것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의 생각과 감정까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할 테니까.
『아몬드』는 RM과 슈가가 읽었다는 사실 외에는 별다른 정보 없이 시작한 책이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갑자기 훅훅 올라오는 감정과 눈물이 조금 당황스러웠다.
왜 우는지 나도 정확히 설명하지 못했다.
책을 덮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책은 감정을 느끼는 법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한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나는 다시 생각하게 된다.
언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결국 사람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일이 아닐까.
문법과 어휘 너머에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살아온 문화와 감정, 생각의 방식.
그것들이 언어를 통해 어떻게 밖으로 나오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한국어교육의 다음 단계인지도 모르겠다.